지금

글나부랭이/오래된나무문 2012.03.05 13:51

지금. 니나 시몬 노래가 좋다. 방금 입 안에 집어 넣어버린 커다란 김밥 꼬다리를 씹는 커다래진 입 속이 좋다. 박조껀씨가 그려준 포크소녀 캐릭터가 좋다. 그래. 나는 지금 다 좋아할 준비가 된 상태이다. 이런 상태가 가능하다는 것은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이야기. 지금. 이라는 것에 의미를 크게 부여해온 건 내 의식이라는 것이 생겨났을 그때부터였으니 꽤 오래되었다. 어디서 줏어들은, 예컨대 죽은 시인의 사회라던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던가 에세이 나부랑이들에서 받아들였겠지. 힘이들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라는 무게, 내일이라는 불안, 전혀 알 수 없는 나라는 존재. 모든 것이 힘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잡을 만하고 견딜 만한건 지금 이 순간, 뿐이었는지도.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이라는 가치 속에 또 깊숙히 숨겨 넣어버린 무책임도 있고, 게으름도 있다. 지금.밖에 없기에 모든걸 불사지를 수도 있지만서도 지금.이 중요하니 과거의 모든 과오들도 책임지지 않고, 끝내야 할 일들도 미룰 수 있고, 이어져 갈 수도 있었을 많은 관계들이 흩어져 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성 때문인지 습관 때문인지 다시 여전히, 지금. 앞이다. 어쩌면 진짜 내가 바래오던  지금을 사는 것을 나는 지금까지 제대로 해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일요일이니 매주 교회가서 회개하던 심정으로 고백하건데, 나는 지금.을 충분히 채우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또 무슨 결심을 할 것인가? 아니다. 그건 아니다. 다시 그렇게 무거웠던 짐들을 짊어질 수는 없다. 그냥 지금, 다시 충실하게 가지길 시작하면 그뿐 아닌가.

다시, 니나 시몬의 노래가 좋다. 내곁에 있는 사람들, 있는 모습 그대로 좋아하기 쉽지 않지만, 좋다. 몸에 느껴지는 약간의 피로감과 술기운도 좋고, 난로 옆의 고양이 두마리는 너무나 따뜻하다. 정말 오랜만의 글쓰기도 좋고, 미묘하게 흐르는 감정들을 관찰하는 것도 좋고, 이렇게 쓰다보니 역시 좀 취했구나 웃게 되는 것도 좋다.

좋은 것만 가지기를 원한 적은 없다. 그러니 지금 좀 좋아도 되지 않나. 다음에 올 지금을 충분히 누리기 위해서 - 그것이 달콤하든 씁쓸하든, 또 아무것도 아니든, 지금. 깨어있고 싶다. 봄이 오고있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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