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글나부랭이/오래된나무문 2009.05.03 06:30
자! 우리 시대를 살면서 펜이나 붓 혹은 클라리넷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예술가가 되는 것이리라. 그런 사람은 바로 예술을 창조하는 것. 진선미의 양식을 얻는 것, 그것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양식으로 제공하는 것, 목마른 인류에게 자기 재능의 보물을 바치는 사제 혹은 선지자가 되기를 꿈꾸는 것이다. 어쩌면 자기 재능을 어떤 사상이나 국가를 위해 쓰고 싶을 것이다. 진정 숭고한 목표다! 놀라운 생각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셰익스피어나 쇼팽같은 예술가들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약간 귀찮은 일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기 바란다. 당신이 아직 쇼팽이나 셰익스피어 같은 예술가가 되지 못했을 때 말이다. 당신은 아직 완전히 예술가도 아니고 예술의 위대한 사제도 아니다. 지금 단계에선 아직 반만 셰익스피어이고 사분의 일만 쇼팽(오! 가증스런 부분들이여!)이다. 따라서 당신이 아무리 잘난 척해도 그 태도는 당신의 씁쓸한 열등감을 드러낼 뿐이다. 그러니까 당신 모습은 마치 억지로 기념물의 받침돌 위에 올라서려는 것과 같다. 당신 몸의 가장 소중하고 섬세한 부분들을 망칠 위험을 무릅쓰고서 말이다.

내 말을 믿기 바란다. 스스로를 실현한 위대한 예술가와 수많은 사이비 예술가들, 그러니까 그러한 실현을 꿈꿀 뿐인 절반짜리 예술가 혹은 사분의 일 짜리 선지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온전한 거장의 능력을 가진 예술가에게 적합한 것이 여러분에게는 다른 느낌을 준다. 자기의 진리에 맞고, 또 자기한테 적합한 개념들을 창조해야 하는데도, 여러분은 여러분의 붓에 공작새 장식을 가져다 단다. 그렇게 해서 언제나 습작 작가로, 언제나 미숙하게, 언제나 뒤편에, 노예이자 모방자로, 예술의 하인이며 숭배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술의은 영원히 여러분을 대기실에 버려둘 뿐이다. 여러분이 최선을 다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 매번 아직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소리를 듣고 다시 새 작품을 가져오는 것, 여러분의 작품을 내세우려고 애쓰는 것, 삼류의 사소한 성공에 집착하고 문학 서클을 조직하고 서로를 칭찬하고 여러분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스스로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보여주는 것, 이 모든 것을 보는 것은 진정 괴로운 일이다.

여러분이 쓰고 만들어내는 것이 여러분 눈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이 모든것은 그저 흉내 내기, 빌려 오기일 뿐이다. 그저 이미 나름의 무게가 있고 가치를 지닌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환상을 반영할 뿐이다. 채 익지 않은 씁쓸한 열매만을 주는 거짓 상황이다. 곧 여러분이 속한 무리 속에서 적의와 경멸, 심술이 퍼져갈 것이고, 각자 모두 타인을 경멸하고 자기 자신을 경멸하게 될 것이다. 당신들은 자동으로 경멸하는 사회가 될 것이고 결국 여러분 스스로를 치명적으로 경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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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톨트 곰브로비치, 페르디두르케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도르 서문' 중







사실 이 장 전체를 다 써야 뭔가 말이되는데 너무 길다. 아직 8-9페이지는 더 되는 것 같은데 기운이 딸린다. 이 소설 정말 묘하다. 비현실적 전개로는 남미문학의 냄새도 나고 사실적 묘사로는 러시아문학 느낌도 있고, 심리를 따라 서술되는 거로는 뭐 포스트모던이라던가...그런데 결국 하고싶은 말은 이런 분류들이 싫다는 거 같기도 하고, 일기같다가 비평같다가 소설로 전개되다가 다시 악에 찬 독백을 뿜어내가다 당췌 어떻게 따라가야한지 애매한데 재미는 있고 그런데 책장은 안넘어가고 뭐 그렇다. 폴란드 작가라고 한다.

부분과 전체, 예술에서 형식이라는 것의 아이러니, 그 속에서 우스꽝스럽게 고통스러워하는 작가로서 자신의 절규들, 뭐 그런게 담긴 장인데 마지막이 이렇게 끝난다.




......물론 여러분의 모든 부분들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나는 정말 더할 나위없이 존중한다. 여러분 역시 내가 속해 있는 인류의 일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또한 다른 한 부분의 부분인 어느 한 부분 중의 한 곳에 부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그 부분의 한 부분의 한곳......도와줘! 오! 이 저주스러운, 끔찍한, 잔인한 부분들이여! 난 다시 여러분에게 잡히고 말았다. 진정 그 누구도 그대들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다. 아야. 아야! 어디에 숨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아야! 이제 그만 해! 이제 그만! 이제 이 책의 이 부분은 마치고 빨리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자. 단언하건대 다음 장에는 작은 부분들이 없을 것이다. 그런 부분들은 버리고 밖으로 던져버릴 것이니까 말이다. 안에는 하나도 남지 않게 하겠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말이다.

비톨트 곰브로비치, 페르디두르케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도르 서문' 중


 



Trackbacks 0 : Comments 4
  1. 혜란 2009.05.06 15:15 Modify/Delete Reply

    내얘기야 니얘기야 이게뭐야
    그러면서 읽었네. 이 작가 뭐야;;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어.

    보고싶어, 인혜야.

    • ine 2009.05.06 18:21 Modify/Delete

      언니야!!!
      나도 보고싶어.
      잘지내지?
      한국에 가긴 가야하는데
      용기가 안나 헤헤

  2. 2009.05.23 15:03 Modify/Delete Reply

    언니 생일 축하!!!!!
    나 안 잊고 있어요. 우리 막내 동생 생일 담날이라서 안 잊는 건 절때 아니고요..ㅎㅎ

    미역국 챙겨 먹고, 케이크도 먹고 그래요.. 보고싶다. 히잉

  3. 망그 2009.06.06 07:14 신고 Modify/Delete Reply

    예전에 니가 얘기했던, 자신의 삶과 맞짱뜨는 사람, 지금까지의 얘술과 맞짱뜨는 사람...

    생각나네. 근데, 맞게 기억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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