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들

글나부랭이/오래된나무문 2010.02.06 23:32

-2010년 2월 4일 목요일 오전 10시 40분
차압이 붙은 물건들을 경매하러 법원사람들과 돈을 요구하는 아빠의 거래처 사람과 경매물건을 담당하는 업체의 사람들이 집을 찾았다. 엄마는 일하러 가셨고 아빠는 이것저것 좀 피해계시는 바람에 나 혼자 집에 있게 되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조촐하게 우리집 거실에서 낯선 아저씨들과 둘러앉았고 법원아저씨는 경매를 진행하셨다. 냉장고 에어콘 세탁기 소파 스팀다리미 5개 품목이 43만원으로 시작해서 45만원에 업체에 낙찰되었다. 모든것이 순식간에 일어났고 업체아저씨들 네 분과 나만 남게 되었는데, 커피를 타오라는 둥 아가씨가 타줘서 맛있다는 둥 나에게 말을 거는 한 아저씨를 다른분들이 놀려대며 나는 어느새 그들 농담의 소재가 되어 있었고 기분이 나빴지만 뭐라 내 의견을 내어놓기는 뭐한 상황이었다. 분명 우리집 거실인데, 나는 완전히 이방인 같았다.  이 조촐한 모임에서 나는 그저 채무자를 대리하는 가족으로서 한 젊은 여자일 뿐, 다른 존재감은 없었다.

-같은 날 오후 2시 30분
시네마테크에서 열리는 프랑스영화 특별전의 마지막 날이었다. 한 케이블 TV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VJ로 돈을 벌어볼까 하여 '부산에서 파리지앵되기' 라는 기획을 했고, 프랑스영화제를 한 꼭지로 찍어볼까 싶어 아침의 찜찜한 기분을 안고 영화관에 갔다. 지난번에 친해진 관리보시는 아저씨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어려울 것같다는 운을 띄우시며 홍보부장님을 만나보라고 했다. 아저씨 예상처럼 거절당했는데, 공식적인 철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 홍보부장님께서 '너무 아마추어 같으신데요' 라고 하셔서 '아마추어 맞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어차피 전체 기획에서는 한 부분이기 때문에 바깥 전경과 포스터 정도 찍겠다고 말씀드렸더니, ' 그건 누구나 찍을 수 있는 부분이라 굳이 이렇게 얘기하러 올 필요 없어요' 라고 말했다. 표를 사고 영화를 보려는 나를 보고 '영화까지 보시려구요?" 라고 말했고, 기다리는 동안 친히 나에게 와서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상영중에 찍으시면 안됩니다' 하셨다. 이 때 기분이 좀 상했던 나는 ' 너무 못 믿으시네요' 한마디를 토해냈다. 그에겐 나를 믿을 이유가 없고, 나에겐 그의 불신을 개인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걸 분명히 인지하고 있으나, 그는 의심했고 나는 상심했다. 공식적인 문서로 증명되지 않으면 프로가 될 수 없고, 프로가 아니면 신임받지 못하는 곳에서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감수해야하는 아마추어일 뿐, 다른 존재감은 없었다.

-같은 날 저녁 8시
부산에서 활동하는 '극단 새벽'에서 낭독공연을 했다. 아돌 후가드라는 남아공 작가의 '시즈위 벤지는 죽었다'라는 작품을 한국의 상황에 맞게 각색하는 과정에서 원작낭독을 통해 관객의 소리를 들어보는 조금은 낯선 공연형태였다.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 당시 글을 읽지 못하는 한 흑인 노동자, 시즈위 벤지라는 인물이 자신의 신분증에 적힌 신분으로는 살고싶은 곳에 거주할 수도 돈을 벌수도 없게 되자, 우연히 발견하게 된 한 시체의 신분증을 훔치고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하게 되는 과정의 이야기였다. 사실, 그것은 결정했다기 보다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의 느낌이 강했고 연극은 자신의 이름을 버리길 원치 않지만 그래야 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갔다. 진지한 주제이지만 오히려 유머러스했고 이 작품을 한국의 이주노동자의 상황에 맞게 각색할 것이라는 극단의 방향도 흥미로웠다. 공연 후 이루어진 뒷풀이에서 백만년만에 자기소개라는 것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누구인지 묻는 사람들 앞에서 이상하게도 나는 매우 편안하게 내 이름을 말하고 내 느낌을 말 할 수 있었다.


하루에 여러 집단의 사람들을 만나고 보니 그들의 얼굴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무엇을 추구하는가가 그들의 얼굴에 반영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 관심사가 돈의 논리였던  오전의 상황, 성취의 논리였던 오후의 상황과 비교해 저녁때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사람과 삶이 읽히고 그것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물론 이것은 피상적인 나의 느낌이고 너무 단순화 시키는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멜랑꼴리 김인혜의 하루에 만난 이 얼굴들에 분명히 어떤 차이가 있었다.

그 어떤 당위나 필요나 효율이(뭐 다시말해 돈이나 서류나 절차나 시스템따위) 존재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고 믿지만 그 믿음이 삶을 더 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존재가 우선한다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이 극단은 좁은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연극'이라는 장르를 '지방'에서 한다는 것에 덧붙혀 '사회적 담론'까지 붙잡고 간다는 것만 봐도!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도시의 잿빛 얼굴들과는 다른 생기와 빛이 있었고 나는 그 얼굴에 위로를 받았다.

-2010년 2월 6일 토요일 저녁 6시
의령에서 손님이 오셨다. 7년전쯤 귀농하신 우리 부모님 세대의 세 분이었는데, 그들 역시 위로의 얼굴을 갖고 계셨다. 며칠 전 얼굴들에 대한 단상이 떠오르며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Trackbacks 0 : Comments 8
  1. cpt 2010.02.09 03:34 Modify/Delete Reply

    위로의 얼굴을 가졌다는 건 얼마나 축복일까..

    그 얼굴을 찾는 안목도~^^

    • ine 2010.02.10 08:13 Modify/Delete

      어쩌면 그냥 착각일지도 모르죠ㅋ
      버텨내기위한...
      근데 또 다들 버텨내고 있더라
      ㅎㅎㅎ

  2. 2010.02.12 11:28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3. uni 2010.02.17 09:55 Modify/Delete Reply

    이네언니 .......


    안되겠다,
    멈춰놨던 모닝페이지를 다시 펼쳐요

    • ine 2010.02.18 12:15 Modify/Delete

      그래 우리 함께!
      윤이가 와주어서 너무 좋았던 걸
      다시 생각하게 된다.

  4. soultree 2010.02.18 11:25 신고 Modify/Delete Reply

    무의미하고 건조하며 방관하고 관조하게 되는 삶의 모습보다 얼마나 감사하고 담백하고 솔직하며 아름답고 삶의 모습인가. 누나 언제나 화이팅.

    • ine 2010.02.18 12:16 Modify/Delete

      예전엔 미처 몰랐던
      차세 위로의 힘!
      고맙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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